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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인 슈마허가 시대를 앞서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인간 중심의 기술’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로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데 대한 성찰과 반성을 주문한 것이다. 지구촌 경제가 좀더 작은 기술과 작은 사업장으로 이뤄진다면 자연자원을 파괴하지 않고 거대주의에 함몰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산물인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간 협상은 시장개방의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규모의 경제’를 여전히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농업정책도 UR 이후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에 중점을 둔 인상이 짙다. 양자 협상인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대책 역시 경쟁력 강화 방안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생산 규모를 늘려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높이는 규모의 경제가 꼭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산업화 진전으로 탄생한 초국적 자본과 대규모 기업농이 제초제와 화학비료의 대량 사용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유전자변형농산물(GMO)로 후진국을 압박, 농업을 마치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의 농업 참여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진행형이다. 엘지(LG)경제연구원이 최근 ‘위클리(Weekly) 포커스’에서 일본 정부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포기하고 기업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자국 내 농업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이유라고 소개한 대목도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좁은 이 땅에서 기업농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1995년) 당시 1만3,097㎡(3,969평)이던 농가 가구당경지면적이 10년 후인 2005년 1만4,187㎡(4,299평), 4년이 더 지난 2009년에도 1만4,394㎡(4,362평)로 조금 늘어나는 데 그칠 정도로 규모화는 분명 한계가 있다. 또 10년 후에도 규모화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도 괜찮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 즉 가족농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종석 전남대 교수와 김사균 농촌진흥청 연구사가 최근 발표한 농업소득 1억원이 넘는 ‘고소득농업경영체(농업회사·영농조합법인은 영업이익 2억원 이상)’의 93%가 ‘가족농’이라고 밝힌 점은 기업화가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를 무색하게 한다.
규모화와 기업형 농업 육성 정책은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특히 기업농은 농업·농촌이 가진 ‘다원적 기능’인 홍수·가뭄조절과 경관유지, 전통문화 계승발전, 순환농업 등을 위협할 것이다. 농산물 생산액(40조원 안팎)보다 훨씬 많은 다원적 가치(70조원 안팎)를 무시하면 큰 화를 자초할 것이 명확해서다. 더 큰 문제는 농촌에 이윤을 우선시하는 외부 기업자본 유입이 농업인들을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킬 수 있어서다.
지금이나 10년 후나 농업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농만이 식량·환경·인구·도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이윤이 적어도 조상부터 이어 온 벼농사를 지으며 다원적 기능에 적극 동참하는 자는 ‘가족농’이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도 가족농 대열에 동참할 것이다. 가족농을 지원해야 할 이유다.
ischoi@nongmin.com
